에른스트 헤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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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른스트 헤켈은 1834년 독일 포츠담에서 태어난 동물학자, 비교해부학 교수, 철학자, 예술가이다. 그는 예나 대학교에서 47년간 재직하며 무척추동물을 연구하고, 지중해 여행을 통해 새로운 방사충을 발견했다. 헤켈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며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반복설을 주장했고, 생물학 용어와 계통수를 제안했다. 그는 저서 『자연의 예술 형태』를 통해 생물 그림을 남겼지만, 사회진화론, 인종주의, 우생학적 견해로 비판받았고, 배아 그림 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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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헤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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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에른스트 하인리히 필리프 아우구스트 헤켈 |
로마자 표기 | Ernst Heinrich Philipp August Haeckel |
출생일 | 1834년 2월 16일 |
출생지 | 포츠담, 프로이센 왕국 |
사망일 | 1919년 8월 9일 |
사망지 | 예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이마르 공화국 |
국적 | 독일 |
서명 | Ernst Haeckel Signature.jpg |
학력 | |
모교 | 베를린 대학교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예나 대학교 |
직업 및 분야 | |
직업 | 생물학자 철학자 의사 예술가 |
분야 | 동물학 자연사 우생학 철학 해양 생물학 |
연구 및 업적 | |
알려진 업적 | 재현 이론 |
저서 | 일반 유기체 형태학 제2권 일반 유기체 형태학 제1권 |
수상 | |
수상 | 린네 메달 (1894년) 다윈-월리스 메달 (은상, 1908년) |
배우자 | |
배우자 | 안나 제테 아그네스 후슈케 |
학문적 약어 | |
동물학 약어 | Haeckel |
식물학 약어 | Haeckel |
2. 생애
에른스트 헤켈은 1834년 2월 16일 포츠담에서 태어나 메르제부르크의 가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857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개업의 면허를 취득하였다.
예나 대학교에서 카를 게겐바우어에게 동물학을 배운 후, 1862년부터 1909년까지 47년간 예나 대학교의 비교해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859년부터 1866년까지 방사충, 해면, 환형동물과 같은 무척추동물을 연구했으며, 지중해 여행 중 150여 종의 방사충을 비롯하여 천여 종을 새로 발견하여 명명하였다. 1866년부터 1867년까지는 카나리제도에서 연구하며 찰스 다윈, 토마스 헉슬리, 찰스 라이엘을 만났다.
1871년 아그네스 후쉬케와 결혼하여 아들 발터, 장녀 엘리자베스, 차녀 엠마를 두었다. 이후 노르웨이, 달마티아, 이집트, 터키, 그리스 등지로 연구 여행을 다녔다. 1910년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1915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쇠약해졌으며, 1919년 8월 9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에른스트 헤켈은 1834년 2월 16일 포츠담에서 태어났다.[11] 1852년 메르제부르크의 대성당 고등학교인 ''돔김나지움''(Domgymnasium)에서 학업을 마쳤다.[12] 그 후 베를린과 뷔르츠부르크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알베르트 폰 쾰리커, 프란츠 레이디히, 루돌프 피르호(후에 잠시 조수로 함께 일했다), 그리고 해부학자이자 생리학자인 요하네스 페터 뮐러와 함께 공부했다.[12] 헤르만 슈타이너와 함께 뷔르츠부르크에서 식물학 강의를 수강했다. 1857년 헤켈은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후 의사 면허를 받았다. 고통받는 환자들과 접촉한 후 의사 직업은 헤켈에게 덜 가치 있는 것으로 보였다.[12]
2. 2. 학문적 경력
에른스트 헤켈은 1852년 메르세부르크의 가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857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개업의 면허를 취득하였다.[24] 이후 예나 대학에서 카를 게겐바우어에게 동물학을 배웠고, 1861년 비교해부학으로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을 받았다. 1862년부터 1909년까지 47년간 예나 대학의 비교해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24]1859년부터 1866년까지 헤켈은 방사충, 해면, 환형동물과 같은 무척추동물을 연구하였다.[24] 지중해 여행 중에는 150여 종의 새로운 방사충을 명명하기도 했다.[24] 1866년부터 1867년까지는 헤르만 폴과 함께 카나리아 제도로 장기 여행을 떠났는데, 이 시기에 찰스 다윈, 토마스 헉슬리, 찰스 라이엘을 만나기도 했다.[13]
1869년에는 연구를 위해 노르웨이를, 1871년에는 크로아티아(흐바르 섬),[14] 1873년에는 이집트, 터키, 그리스를 여행했다.[12] 1907년에는 대중에게 진화를 가르치기 위해 예나에 예나 계통 박물관을 건립하였다.[12] 헤켈은 1909년 교수직에서 은퇴했다.[12]
2. 3. 은퇴와 죽음
1910년 에른스트 헤켈은 교수직에서 은퇴하였고, 1915년 아내 아그네스 후쉬케가 세상을 떠난 후 쇠약해졌다.[12] 그는 1918년 예나에 있는 자신의 저택 "빌라 메두사(Villa Medusa)"를 카를 자이스 재단에 팔았으며, 재단은 그의 서재를 보존했다.[12] 헤켈은 1919년 8월 9일 사망하였다.[19]3. 연구 업적
헤켈은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뛰어난 예술가, 삽화가였으며, 후에는 비교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1859년부터 1866년까지 방산충류, 해면동물, 환형동물 등 여러 동물문을 연구했다.[24] 지중해 여행 중에는 약 150종의 새로운 방산충류를 명명하기도 했다.[24] 그는 심리학을 생리학의 한 분야로 간주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1866년에는 프로티스타 계를 제안했다.[12]
헤켈은 3,000종이 넘는 생물을 발견하고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는 그의 분류나 발견 자체가 수정된 생물도 존재한다.
말년에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자연철학자로서도 발언했다. 주요 저서는 Die Welträtsel|디 벨트레첼de(한국어 번역: 『우주의 수수께끼』)이다.
3. 1. 진화론 연구
헤켈은 발생반복설(發生反復說, Recapitulation theory) 또는 반복설(反復說)로 더 잘 알려진, 개체가 성장하는 동안 진화의 단계를 반복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인간의 태아가 어류, 파충류 등의 단계와 유사한 모습을 거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헤켈의 발생도는 다른 진화학 연구자들에 의해 그가 의도적으로 그림을 더 유사하게 그리는 등 조작했다는 점이 밝혀졌다.[102][103]
헤켈은 심리학을 생리학의 한 분야로 간주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1866년에 ''프로티스타'' 계를 제안했다.[12] 그는 자연선택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라마르크주의를 신봉했다.[28]
헤켈은 1820년대 에티엔 세르가 제시하고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의 추종자들이 지지했던 초기 재현설을 발전시켰다. 그는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구절로 자신의 이론을 요약했다. 그의 재현 개념은 그가 제시한 형태(현재 "강한 재현설"이라고 불림)에서는 반박되었고,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가 처음 제시한 사상에 유리하게 되었다. 강한 재현 가설은 개체 발생을 성체 조상의 형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약한 재현설은 반복되고 그 위에 구축되는 것은 조상의 배아 발생 과정이라는 의미이다.[30] 헤켈은 이후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 배아 그림으로 이 이론을 뒷받침했으며, 이 이론은 현재 매우 복잡한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배아 비교[31]는 모든 동물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방법으로 남아 있다.
헤켈은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1859) 출판 당시, 인간 진화의 증거가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인 ''Pithecanthropus alalus''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리하르트 헤르트비히와 오스카르 헤르트비히와 같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외젠 뒤부아라는 네덜란드인이 1891년에 자바 원인의 유골을 발견했고, 이 유골은 헤켈의 ''Pithecanthropus''로 분류했지만, 나중에 ''호모 에렉투스''로 재분류되었다.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34] 뒤부아의 자바 원인을 현생 인류와 다른 대형 유인원과 공유하는 공통 조상 사이의 잠재적인 중간 형태로 제안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의 현재 합의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은 자바 원인과 베이징 원인에 의해 예시된 아시아 개체군이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아마도 ''호모 에르가스터'')의 아프리카 개체군이라는 것이다.
헤켈은 다윈의 "진화" 사상은 지지했지만, 개별 이론으로서의 적자생존설은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학설은 라마르크의 사상(라마르키즘)인 용불용설에 더 가까웠다. 그는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이라는 독자적인 발생 이론을 주장했다. 이 설은 수정되었지만, 현재도 발생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 설에 기초하여 동물의 계통론을 전개하고, 동물의 다세포화에 대해 가스트레아설을 제창하여 수정과 비판을 받았지만, 이 분야에서 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3. 2. 반복설 (Recapitulation theory)
발생반복설(發生反復說, Recapitulation theory) 혹은 반복설(反復說)은 개체가 성장하는 동안 진화의 단계를 반복한다는 주장이다. 헤켈은 인간의 태아가 어류, 파충류 등의 단계와 유사한 모습을 거쳐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헤켈의 발생도는 이후 다른 진화학 연구자들에 의해 헤켈이 의도적으로 그림을 더 유사하게 그리는 등 조작했다는 점이 밝혀졌다.[102][103]
헤켈은 1820년대에 에티엔 세르가 제시하고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의 추종자들이 지지했던 초기의 재현설을 발전시켰다.[29] 이는 개체 발생(형태의 발달)과 계통 발생(진화적 혈통) 사이의 연관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구절로 요약했다. 그의 재현 개념은 그가 제시한 형태(현재 "강한 재현설"이라고 불림)에서는 반박되었고,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가 처음 제시한 사상에 유리하게 되었다. 강한 재현 가설은 개체 발생을 성체 조상의 형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약한 재현설은 반복되고 그 위에 구축되는 것은 조상의 배아 발생 과정이라는 의미이다.[30] 헤켈은 이후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 배아 그림으로 이 이론을 뒷받침했으며, 이 이론은 현재 매우 복잡한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배아 비교[31]는 모든 동물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방법으로 남아 있다. 헤켈은 헤테로크로니 개념, 즉 진화 과정에서 배아 발생 시기의 변화를 도입했다.[32][33]

1850년대 학생이었던 하이켈은 배아학에 큰 관심을 보였고, 당시 교과서에는 그림이 거의 없었다. 학생들에게 반사 현미경으로 작은 형태를 보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대형 판이 사용되었으며, 반투명 조직이 검은 배경에 비쳐 보였다. 발달 단계는 종 내의 단계를 보여주는 데 사용되었지만, 일관성 없는 견해와 단계 때문에 서로 다른 종을 비교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모든 유럽 진화론자들은 모든 척추동물이 초기 단계에서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1820년대부터 인간 배아가 모든 주요 동물 그룹의 성체 형태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는 낭만주의적 재현 이론과, 다른 종의 성체와 유사하지 않고 네 가지 주요 특수 형태 그룹으로 발산하는 초기 일반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폰 베어의 배아 발생 법칙에서 언급된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의 반대 견해 사이에 지속적인 논쟁이 있었다. 헤켈이 강의를 할 무렵에는 자신의 스승인 알베르트 폰 켈리커가 집필한 목판화 그림이 있는 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교과서는 인간의 발달을 설명하는 동시에 다른 포유류 배아를 사용하여 일관된 순서를 주장했다. [54]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64년 헤켈이 읽었을 때 강한 인상을 주었는데, 다윈은 "이렇게 배아를 각 동물의 큰 종류의 공통 조상 형태의 그림으로, 다소 흐릿하게 보이는 그림으로 볼 때 발생학은 흥미가 크게 높아진다"라고 결론지었다. 헤켈은 1년 만에 방대한 『일반 형태학(Generelle Morphologie)』을 저술하여 1866년에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는 다윈의 사상과 괴테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일의 자연철학 전통, 그리고 라마르크의 진보적 진화론인 라마르크설을 그가 "다위니즘(Darwinismus)"이라고 부르는 것과 결합한 혁신적인 새로운 종합을 제시했다. 그는 화석 증거가 없더라도 발생학을 조상 관계의 증거로 사용하여 형태학을 이용하여 생명의 진화 역사를 재구성했다. 그는 자신의 진화된 반복 이론, 즉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개체 발생과 계통 발생을 포함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헤켈의 출판사는 "엄격하게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제2판에 대한 제안을 거절했다.
헤켈의 목표는 진화를 우주적 종합의 조직 원리로 삼아 과학, 종교, 예술을 통합하는 개혁된 형태학이었다. 그는 그의 스승인 루돌프 피르호가 개척한 방식으로 예나의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그의 생각에 대한 성공적인 "대중 강연"을 했다. 출판사의 대중적인 저서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는 1868년 그의 저서 『자연적 창조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의 기초로 학생이 그의 강연을 기록한 내용을 사용하여 진화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그해 봄, 그는 책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예나에서 표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종합하여 유형을 나타내는 그림을 출판했다. 출판 후 그는 동료에게 "그 그림들은 완전히 정확하며, 일부는 자연에서 복사되었고, 일부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러한 초기 단계에 대한 모든 그림들로부터 조합되었다"라고 말했다. 헤켈은 비공개적으로 자신의 그림이 정확하고 종합적이라고 믿었고, 공개적으로는 대부분의 교육에 사용되는 그림처럼 개략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지는 크기와 방향이 일치하도록 수정되었고, 헤켈 자신의 필수적인 특징에 대한 견해를 보여주지만, 척추동물 배아가 유사하게 시작하여 발산한다는 폰 베어의 개념을 뒷받침한다. 그리드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결하면 강력한 진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책으로서, 출처를 인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랐다.
이 책은 매우 잘 팔렸고, 헤켈의 진화론적 견해에 반대하는 일부 해부학 전문가들은 특정 그림이 다소 자유롭게 그려졌다는 사적인 우려를 표명했지만, 그림은 그들이 이미 배아의 유사성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최초로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사람은 바젤 대학교의 동물학 및 비교해부학 교수인 루트비히 뤼티마이어였다. 1868년 말, 그는 『인류학 기록(Archiv für Anthropologie)』에서 그 저서가 "대중적이고 학문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두 번째가 사실인지 의심하며, 진화 나무와 같은 그림이 비전문가에게 보여지는 등 인간의 자연 속에서의 위치에 대한 그러한 공개적인 논의에 대해 공포를 표명했다. 그는 배아 그림이 표본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그 주제는 최고의 "세심함과 성실성"을 요구했으며, 예술가는 "추측적인 목적으로 임의로 원본을 모델링하거나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의 작품과 비교하여 증명되었다. 특히, "하나의 동일하고, 게다가 잘못 해석된 목판화가 세 번 연속으로 그리고 세 가지 다른 제목으로 독, 병아리, 거북이의 배아로 독자에게 제시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헤켈을 "대중과 과학과 함부로 장난을 치고" 진지한 연구자의 진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헤켈은 종교적 편견에 굴복했다는 격렬한 비난으로 응수했지만, 두 번째(1870년) 판에서는 중복된 배아 이미지를 "포유류 또는 조류 배아"라는 제목의 단일 이미지로 변경했다. 1891년 헤켈은 이 "극도로 경솔한 어리석음"이 지나친 서두름으로 발생했지만 "선의의" 것이었고, 우연한 세부 사항의 반복은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하므로 고의적인 속임수였을 가능성은 적다고 변명했다.
1,500부의 개정판인 1870년 제2판은 더 많은 관심을 끌었고, 이 책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새로운 독일 제국에서 낙관적이고, 민족주의적이고, 반교권적인 "진보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더 큰 인쇄 부수로 개정판이 잇따랐다. 초기 척추동물 배아의 유사성은 상식이 되었고, 그 그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마이클 포스터와 같은 전문가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871년 그의 저서 『인간의 유래 및 성과 관련된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의 서문에서 다윈은 헤켈에게 특별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연적 창조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가 "내 논문이 쓰여지기 전에 출판되었다면, 나는 아마 결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첫 번째 장에는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 독자는 배아 그림을 본 적이 없을 수 있으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정확한 두 가지 작품에서 주의 깊게 복사한 초기 발달 단계의 인간과 개의 배아 그림을 하나씩 제시했습니다"라고 하며, 각주에서 출처를 인용하고 "헤켈 또한 그의 『창조사(Schöpfungsgeschichte)』에서 유사한 그림을 제시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헤켈의 책 제5판은 1874년에 출판되었으며, 표지에는 이전의 논란이 되었던 유인원과 인간의 머리 그림을 대체하여 헤켈 자신의 영웅적인 초상화가 실렸다.[56]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반복설"이라는 독자적인 발생 이론을 주장했다. 이 설은 수정을 받았지만, 현재도 발생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 설에 기초하여 동물의 계통론을 전개하고, 동물의 다세포화에 대해 가스트레아설을 제창하여 수정과 비판을 받았지만, 이 분야에서 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3. 3. 계통수 작성 및 생물학 용어 제안
헤켈은 심리학을 생리학의 한 분야로 간주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866년에 ''프로티스타'' 계를 제안했다.[12] 자연선택을 지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라마르크주의를 믿었다.[28]헤켈은 1820년대에 에티엔 세르가 제시하고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의 추종자들이 지지했던 초기의 재현설을 발전시켰다.[29] 이는 개체 발생(형태의 발달)과 계통 발생(진화적 혈통) 사이의 연관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구절로 요약했다. 그의 재현 개념은 그가 제시한 형태(현재 "강한 재현설"이라고 불림)에서는 반박되었고,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가 처음 제시한 사상에 유리하게 되었다. 강한 재현 가설은 개체 발생을 성체 조상의 형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약한 재현설은 반복되고 그 위에 구축되는 것은 조상의 배아 발생 과정이라는 의미이다.[30] 헤켈은 이후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 배아 그림으로 이 이론을 뒷받침했으며, 이 이론은 현재 매우 복잡한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배아 비교[31]는 모든 동물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방법으로 남아 있다. 헤켈은 헤테로크로니 개념, 즉 진화 과정에서 배아 발생 시기의 변화를 도입했다.[32][33]

헤켈은 다윈의 "진화" 사상을 지지했지만, 개별 이론으로서의 적자생존설은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학설은 라마르크주의에 가깝다. 그는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이라는 독자적인 발생 이론을 주장했다. 이 설은 수정되었지만, 현재도 발생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 설에 기초하여 동물의 계통론을 전개하고, 동물의 다세포화에 대해 가스트레아설을 제창하여 수정과 비판을 받았지만, 이 분야에서 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헤켈은 신종 발견 및 명명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 수는 3,000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는 그의 분류나 발견 자체가 수정된 생물도 존재한다.
발생의 재현성에 대한 관심은 논술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표현되었으며, 『자연의 예술적 형태』(원제: Kunstformen der Natur|쿤스트포르멘 데어 나투어de, 영역: "Art Forms of Nature", 한국어 번역: 『생물의 경이로운 형태』 등)의 아름다운 생물 그림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헤켈은 화려한 인물이었으며, 때때로 이용 가능한 증거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큰 도약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다윈이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1859)을 출판했을 당시, 헤켈은 인간 진화의 증거가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당시에는 인간 조상의 유골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이론적 유골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인 ''Pithecanthropus alalus''라는 이름을 붙였다.
헤켈의 목표는 진화를 우주적 종합의 조직 원리로 삼아 과학, 종교, 예술을 통합하는 개혁된 형태학이었다. 그는 그의 스승인 루돌프 피르호가 개척한 방식으로 예나의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그의 생각에 대한 성공적인 "대중 강연"을 했다. 출판사의 대중적인 저서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는 1868년 그의 저서 『자연적 창조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나튀를리헤 쇠풍스게쉬히테de)』의 기초로 학생이 그의 강연을 기록한 내용을 사용하여 진화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그 해 봄, 그는 책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예나에서 표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종합하여 유형을 나타내는 그림을 출판했다. 출판 후 그는 동료에게 "그 그림들은 완전히 정확하며, 일부는 자연에서 복사되었고, 일부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러한 초기 단계에 대한 모든 그림들로부터 조합되었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더 개략적인 표현부터 특정 표본에 대한 "사실적인" 그림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배아 그림이 있었다. 헤켈은 비공개적으로 자신의 그림이 정확하고 종합적이라고 믿었고, 공개적으로는 대부분의 교육에 사용되는 그림처럼 개략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지는 크기와 방향이 일치하도록 수정되었고, 헤켈 자신의 필수적인 특징에 대한 견해를 보여주지만, 척추동물 배아가 유사하게 시작하여 발산한다는 폰 베어의 개념을 뒷받침한다. 그리드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결하면 강력한 진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책으로서, 출처를 인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랐다.
1,500부의 개정판인 1870년 제2판은 더 많은 관심을 끌었고, 이 책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새로운 독일 제국에서 낙관적이고, 민족주의적이고, 반교권적인 "진보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더 큰 인쇄 부수로 개정판이 잇따랐다. 초기 척추동물 배아의 유사성은 상식이 되었고, 그 그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마이클 포스터와 같은 전문가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871년 그의 저서 『인간의 유래 및 성과 관련된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의 서문에서 다윈은 헤켈에게 특별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연적 창조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나튀를리헤 쇠풍스게쉬히테de)』가 "내 논문이 쓰여지기 전에 출판되었다면, 나는 아마 결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첫 번째 장에는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 독자는 배아 그림을 본 적이 없을 수 있으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정확한 두 가지 작품에서 주의 깊게 복사한 초기 발달 단계의 인간과 개의 배아 그림을 하나씩 제시했습니다"라고 하며, 각주에서 출처를 인용하고 "헤켈 또한 그의 『창조사(Schöpfungsgeschichte|쇠풍스게쉬히테de)』에서 유사한 그림을 제시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헤켈의 책 제5판은 1874년에 출판되었으며, 표지에는 이전의 논란이 되었던 유인원과 인간의 머리 그림을 대체하여 헤켈 자신의 영웅적인 초상화가 실렸다.[56]

3. 4. 『자연의 예술 형태』
헤켈은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뛰어난 예술가이자 삽화가였으며, 후에는 비교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진화와 일반적인 생명 발생 과정, 특히 무작위적이지 않은 형태의 발달에 있었으며, 이는 아름다운 삽화로 가득한 『자연의 예술 형태』(Art forms of nature)로 절정에 달했다.[28]
발생의 재현성에 대한 관심은 논술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표현되었으며, 『자연의 예술 형태』(원제: Kunstformen der Natur, 영역: "Art Forms of Nature", 한국어 번역: 『생물의 경이로운 형태』 등)의 아름다운 생물 그림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해파리 등의 무척추동물, 방산충의 그림 연구가 유명하다.
4. 정치 및 사회적 견해
헤켈의 저서와 강연은 인종차별, 국민주의, 사회다윈주의 등의 과학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특히 "정치는 생물학의 응용이다."라는 그의 말은 나치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37] 헤켈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가 단일한 통일성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일원론을 펼쳤으며, 정치, 경제, 도덕이 생물학의 응용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인종의 발전도 필요하며, 미개한 종족은 발달된 종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켈은 찰스 다윈의 아프리카 기원설과 달리, 인류가 아시아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 아대륙(힌두스탄)이 최초의 인류가 진화한 곳이며, 인류가 동남아시아의 영장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48][49] 또한, 인도양에 위치한 잃어버린 대륙 레무리아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레무리아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여 인류가 세계 각지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고 보았다.[50][51]
4. 1. 일원론
헤켈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면이 필연적으로 단일한 통일성을 지니게 된다는 일원론을 주창하였고, 정치, 경제, 도덕은 생물학의 응용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입장 아래 개개인의 발전 만큼이나 인종의 발전이 필요하며 미개한 종족은 보다 발달한 종족의 관리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0]1892년 저서 《일원론이 종교와 과학을 연결하는 것으로》에서 자연 세계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이해와 가장 잘 맞는 견해로서 일원론을 옹호했다. 그의 일원론적 관점은 범신론적이고 비인격적이었다. 헤켈은 자연에 대한 현재 지식과 일치하는 유일한 신에 대한 일원론적 사상은 모든 것 속에서 신성한 정신을 인식한다고 보았다. 또한, 신을 "인격적인 존재" 또는 공간적으로 제한된 범위를 가진 개체, 심지어 인간의 형태로도 결코 인식할 수 없으며, 신은 어디에나 있다고 주장했다.[20]
헤켈은 독일에서 일원론의 가장 유명한 지지자가 되었다.[21] 1906년 헤켈은 일원주의자 연맹(Deutscher Monistenbund)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는데, 이 연맹은 철학적 유물론에 반대하고 "자연적 세계관"을 촉진하는 입장을 취했다.[22] 이 단체는 1933년까지 존속했으며, 빌헬름 오스트발트, 게오르크 폰 아르코, 헬레네 슈퇴커 및 발터 아서 베렌드존과 같은 저명한 회원들을 포함했다.[23]
훗날 헤켈의 저서와 강연록은 인종차별, 국민주의, 사회다윈주의 등의 과학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헤켈의 "정치는 생물학의 응용이다."라는 말은 후일 나치에 의해 이용되었다. 나치는 헤켈의 일원론을 이용하여 그들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였다.
4. 2. 사회진화론
헤켈의 저서와 강연록은 나중에 인종 차별, 국민주의, 사회다윈주의 등의 과학적 근거로 사용되었다.헤켈은 "정치는 생물학의 응용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후일 나치에 의해 이용되었다.[24] 나치는 헤켈의 일원론을 이용하여 그들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였다. 헤켈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면이 필연적으로 단일한 통일성을 지니게 된다는 일원론을 주창하였고, 정치, 경제, 도덕은 생물학의 응용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입장 아래 개개인의 발전 만큼이나 인종의 발전이 필요하며 미개한 종족은 보다 발달한 종족의 관리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헤켈은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애정과 라마르크주의의 일종을 수용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신념에 영향을 받았다. 엄격한 자연선택(다윈주의)자가 아니었던 헤켈은 유기체의 특징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영한다고 믿었다. 그는 사회 과학을 "응용 생물학"의 예로 보았고, 이 문구는 나치 선전에 사용되었다.[24]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해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었다.[25]
그러나 헤켈의 책들은 나치당에 의해 금지되었는데, 나치당은 일원론과 헤켈의 사상의 자유를 거부했다. 게다가 헤켈은 독일 문화에 대한 유대인 지식인들의 큰 공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이 많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26]
4. 3. 인종주의와 우생학
헤켈의 저서와 강연은 인종차별, 국민주의, 사회다윈주의의 과학적 근거로 이용되었다. 특히 "정치는 생물학의 응용이다."라는 그의 말은 나치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37] 헤켈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가 단일한 통일성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일원론을 펼쳤으며, 정치, 경제, 도덕이 생물학의 응용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인종의 발전도 필요하며, 미개한 종족은 발달된 종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찰스 다윈이 인류의 단일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한 반면, 헤켈은 언어학자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의 영향을 받아 인종차별적인 진화적 다인종 기원설을 제시했다. 슐라이허는 여러 언어 집단이 말을 하지 못하는 원인(Urmenschen)에서 각각 발생했고, 이 원인들은 유인원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헤켈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가장 잠재력 있는 언어가 가장 잠재력 있는 인종을 낳으며, 그 선두에 셈족과 인도-게르만족, 특히 베르베르족, 유대인, 그리스-로마인, 게르만족이 있다고 주장했다.[37]
헤켈은 인류를 10개의 인종으로 나누고 코카서스 인종이 가장 우월하며, 원시 인종은 멸망할 운명이라고 보았다.[40] 그는 '흑인'은 야만인이고 백인은 가장 문명화된 인종이라고 주장했으며, '흑인'의 발가락이 다른 인종보다 더 강하고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을 들어 덜 진화했다고 주장하며 유인원에 비유하기도 했다.[41]
스티븐 제이 굴드는 헤켈의 진화론적 인종주의, 인종적 순수성과 국가에 대한 헌신 촉구, 진화 법칙에 따른 우월 인종의 지배권 주장 등이 나치즘의 부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42] 나치당 이데올로그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는 실제로 헤켈의 저서를 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43]
그러나 헤켈이 반유대주의에 반대하고 나치가 싫어하는 사상을 지지했기 때문에 나치가 헤켈을 배척했다는 주장도 있다.[45] 독일 동물학회는 예나 선언을 통해 인간 "인종" 개념을 거부하고 헤켈의 인종 이론과 거리를 두었다.[46][47]
헤켈은 "미개", "성숙"과 같은 표현을 경솔하게 사용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 대륙이 아닌 아시아에 있다고 주장하여 다지역 기원설의 선구자로 재평가되기도 한다.[96]
바티칸 교황청 레지나 아포스톨룸 대학교의 리카르도 카쇼리와 안토니오 가스파리는 헤켈이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평가하며, 장애인을 모르핀으로 고통 없이 해방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97][98] 헤켈의 사회다윈주의적 주장은 우생학으로 이어졌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지탱하는 이론적 근거로 취급되기도 했다.[99]
4. 4. 아시아 기원설

헤켈은 인류의 기원이 아시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 아대륙(힌두스탄)이 최초의 인류가 진화한 실제 장소라고 믿었다. 헤켈은 인류가 동남아시아의 영장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며 다윈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배척했다.[48][49]
헤켈은 나중에 인도양에 위치한 잃어버린 대륙인 레무리아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레무리아가 최초 인류의 고향이며 아시아가 초기 영장류의 고향 중 하나였다고 믿었고, 따라서 아시아가 인류 진화의 요람이라는 것을 지지했다. 헤켈은 또한 레무리아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여 인류의 이동이 세계 다른 지역으로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다.[50][51]
헤켈의 책 "창조의 역사"(1884)에는 그가 생각하는 레무리아 외부에서 최초 인류가 사용했던 이동 경로가 포함되어 있다.[52]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는 다윈 등의 단일 기원설(Monogenesis)과 대립하여 아시아에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다지역 기원설을 주장한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96]
5. 비판과 논란
19세기 중반, 진화론은 과학의 부상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지만, 종교와 정치를 둘러싼 사회 문제가 되었고,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진화론을 지지한 에른스트 헤켈은 생전부터 오해와 중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생학의 원류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물학자로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5. 1. 나치즘과의 연관성 논란
헤켈의 저서와 강연은 인종차별, 국민주의, 사회다윈주의 등의 과학적 근거로 사용되었다.[24] 헤켈의 "정치는 생물학의 응용이다."라는 말은 나치에 의해 이용되었다.[24] 나치는 헤켈의 일원론을 이용하여 인종차별을 정당화하였다.[24]헤켈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면이 필연적으로 단일한 통일성을 지니게 된다는 일원론을 주창하였고, 정치, 경제, 도덕은 생물학의 응용이라고 주장하였다.[24] 그는 이러한 입장 아래 개개인의 발전 만큼이나 인종의 발전이 필요하며 미개한 종족은 보다 발달한 종족의 관리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4]
헤켈은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애정과 라마르크주의를 수용함으로써 정치적 신념에 영향을 받았다.[24] 엄격한 자연선택(다윈주의)자가 아니었던 헤켈은 유기체의 특징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영한다고 믿었다.[24] 그는 사회 과학을 "응용 생물학"의 예로 보았고, 이 문구는 나치 선전에 사용되었다.[24]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해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었다.[25]
그러나 헤켈의 책들은 나치당에 의해 금지되었는데, 나치당은 일원론과 헤켈의 사상의 자유를 거부했다.[26] 게다가 헤켈은 독일 문화에 대한 유대인 지식인들의 큰 공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이 많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26]
일부 역사학자들은 헤켈의 사회다윈주의를 나치즘 이데올로기의 전조로 본다.[78][79][80] 반면 다른 학자들은 그러한 관계를 완전히 부정한다.[81][82]
증거는 어떤 면에서 모호하다. 한편으로 헤켈은 과학적 인종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진화생물학이 인종 간 지능과 능력의 불평등을 명확히 증명했으며, 그들의 삶의 가치 또한 불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베다족이나 오스트레일리아 흑인과 같은 하위 인종은 심리적으로 유인원이나 개와 더 가깝고 문명화된 유럽인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삶에 완전히 다른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83] "생존 경쟁"의 결과로 "하위" 인종은 결국 멸종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84] 그는 또한 "적자생존"이 자연법이며, 투쟁이 인종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사회다윈주의자였다.[85] 우생학 옹호자로서 그는 약 20만 명의 정신 질환자와 선천적 질환자를 의료 통제 위원회가 처치해야 한다고 믿었다.[86] 이러한 생각은 나치 독일의 아ktion T4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나중에 실행되었다.[87] 알프레트 플뢰츠(Alfred Ploetz)는 독일 인종위생협회(German Society for Racial Hygiene)의 창립자로 헤켈을 반복적으로 칭찬했고, 명예 회원이 되도록 초청했다. 헤켈은 초청을 수락했다.[88] 헤켈은 또한 독일이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로 통치되어야 하며, 사회 내부 및 사회 간의 불평등은 진화 법칙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믿었다.[89] 헤켈은 또한 독일 문화의 우월성을 강하게 믿는 극단적인 독일 민족주의자였다.[90]
반면에 헤켈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가 구성한 인종 계층 구조에서 유대인은 나치즘의 인종 사상과는 달리 하위가 아닌 상위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91] 그는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화주의자였으나, 전쟁을 옹호하는 선전물을 작성했다.[91] 헤켈과 나치즘 사이의 의미 있는 연관성을 부정하는 역사가들의 주요 주장은 헤켈의 사상이 당시 매우 흔했고, 나치는 다른 사상가들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았으며, 헤켈은 나치즘의 전조가 아닌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자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91][92] 그들은 또한 진화 생물학과 나치 이데올로기 사이의 불일치를 지적한다.[92]
나치들조차 헤켈을 그들의 이데올로기 개척자로 간주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친위대(Schutzstaffel) 대장이자 생물학자인 하인츠 브뤼허(Heinz Brücher)는 1936년 헤켈의 전기를 써서 그를 "생물학적 국가 사상의 개척자"로 칭찬했다.[93] 이러한 견해는 학술지인 ''Der Biologe''에서도 공유되었는데, 이 잡지는 1934년 헤켈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를 나치즘의 선구적인 사상가로 칭찬하는 여러 에세이를 발표했다.[94] 다른 나치들은 헤켈과 거리를 두었다. 1935년에 발표된 나치 선전 지침에는 다윈과 진화를 대중화한 책들이 "삭제 목록"에 포함되었는데, 헤켈도 금지된 작가로 이름이 언급되었다.[95] 나치 인종 정치부의 일원인 군터 헤히트(Gunther Hecht)도 헤켈을 나치즘의 선구자로 거부하는 각서를 발표했다.[95] 나치 정치 철학자 쿠르트 힐데브란트(Kurt Hildebrandt)도 헤켈을 거부했다.[95] 결국 헤켈은 나치 관료들에 의해 거부되었다.[95]
5. 2. 배아 그림 조작 논란
헤켈은 인간 태아가 어류나 파충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성장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그림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진화학 연구자들은 헤켈이 그림을 의도적으로 유사하게 그리는 등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02][103]1868년, 헤켈은 자신의 저서 『자연적 창조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에서 배아 그림을 사용하여 진화를 설명했다. 그는 동료에게 그림이 정확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그림들을 조합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배아 그림이 있었는데, 헤켈은 자신의 그림이 정확하면서도 교육에 사용되는 개략적인 그림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일부 해부학 전문가들은 그림이 다소 자유롭게 그려졌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루트비히 뤼티마이어는 헤켈이 같은 목판화를 세 번 반복 사용하여 다른 동물의 배아를 표현한 것을 비판하며, 헤켈이 대중과 과학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헤켈은 종교적 편견 때문이라는 격렬한 비난으로 응수했지만, 이후 판에서는 중복된 이미지를 수정했다.
1874년, 헤켈의 발생학 교과서 『인류기원(Anthropogenie)』이 출판되자, 빌헬름 히스는 이전의 비판을 다시 제기하며 삽화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가했다. 다른 전문 해부학자들과 가톨릭 사제들, 그리고 헤켈의 견해에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지지자들도 가세했다.
헤켈이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독립적인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58] 최근 연구에 따르면 헤켈의 배아 그림에 대한 일부 비판은 타당하지만, 다른 비판은 근거가 없었다.[59][60] 또한, 헤켈과 빌헬름 히스 사이의 불화 양측 모두에서 "꼼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61]
1874년, 헤켈이 『인류기원(Anthropogenie)』을 출판한 직후, 빌헬름 히스 등은 책에 실린 삽화가 의도적으로 날조되었다고 주장했다. 헤켈은 날조 사실을 부인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삽화의 날조 비판은 정당하지만, 일부 비판은 당시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았던 세력의 정치적 공격이라는 편향된 것이었다고 여겨진다.[100][101]
6. 저서
헤켈의 문학적 업적은 방대하여 많은 책, 과학 논문 및 삽화를 포함한다.[77]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
---|---|---|
《방산충류》 (Radiolaria) | 1862 | |
《유즐동물》 (Kalkschwämme) | 1869 | |
《단세포 생물》(Protisten) | 1870 | |
《석회질 해면동물》(Kalkschwämme) | 1872 | |
《심해 해파리》(Deep-Sea Medusae) | 1881 | |
《흡관자》(Siphonophora) | 1888 | |
《심해 각질동물》(Deep-Sea Keratosa) | 1889 | |
《방산충》(Radiolaria) | 1887 | |
《유기체의 일반 형태학: 찰스 다윈이 개정한 계통 발생 이론에 의해 기계적으로 뒷받침된 유기적 형태 과학의 일반적 기초》(Generelle Morphologie der Organismen: allgemeine Grundzüge der organischen Formen-Wissenschaft, mechanisch begründet durch die von Charles Darwin reformirte Descendenz-Theorie.) | 1866 | 베를린 |
https://de.wikiversity.org/wiki/Haeckel,_Ernst_(1868)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 | 1868 | 영어판 https://web.archive.org/web/20121022155413/http://www.geology.19thcenturyscience.org/books/1876-Haeckel-HistCrea/Vol-I/htm/doc.html The History of Creation (1876; 6판: 뉴욕, D. 애플턴 앤드 컴퍼니, 1914, 2권) |
Freie Wissenschaft und freie Lehre | 1877 | 영어판 Free Science and Free Teaching |
《계통적 계통 발생》(Die systematische Phylogenie) | 1894 | |
Anthropogenie, oder, Entwickelungsgeschichte des Menschen | 1895 | Anthropogenie, oder, Entwickelungsgeschichte des Menschenit |
《우주의 수수께끼》(Die Welträthsel) | 1895–1899 | 영어판 The Riddle of the Universe: At the Close of the Nineteenth Century (조셉 맥케이 번역, 뉴욕 및 런던: 하퍼 & 브라더스 퍼블리셔스, 1900) |
《인간 기원에 대한 우리의 현재 이해》(Über unsere gegenwärtige Kenntnis vom Ursprung des Menschen) | 1898 | 영어판 The Last Link (1898) |
《진화 사상에 대한 투쟁》(Der Kampf um den Entwickelungsgedanken) | 1905 | 영어판 Last Words on Evolution: A Popular Retrospect and Summary (조셉 맥케이 2판 번역, 뉴욕: 피터 에클러 출판사; 런던: A. 오웬 앤드 컴퍼니, 1906) |
《생명의 경이》(Die Lebenswunder) | 1904 | 영어판 https://openlibrary.org/works/OL16420977W/Wonders_of_life_A_Popular_Study_of_Biological_Philosophy The Wonders of Life |
http://nbn-resolving.de/urn:nbn:de:hbz:061:2-22176 Kristallseelen : Studien über das anorganische Leben | 1917 | 결정 영혼: 무기적 생명에 대한 연구 |
《인도 여행기》(Reisebriefe aus Indien) | 1882 | Travel notes of India |
《말레이시아 여행기》(Aus Insulinde: Malayische Reisebriefe) | 1901 | Travel notes of Malaysia |
자연의 예술 형태 (Kunstformen der Natur) | 1904 | [http://nbn-resolving.de/urn:nbn:de:hbz:061:2-170858 디지털판 (1924)] |
《여행의 이미지》 (Wanderbilder) | 1905 | "Travel Images" |
https://archive.org/details/visittoceylon00haecuoft 실론 방문기 (Ein Besuch auf Ceylon) | | |
다윈의 1859년 저서 ''종의 기원''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전문적인 서적이었기에 헤켈의 저서 중 하나인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자연적 창조사)는 그의 "다윈주의"를 세계에 설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68년 베를린에서 출판된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으며 도발적인 삽화가 들어 있었고, 1876년에 영어로 ''The History of Creation''(창조의 역사)으로 번역되었다. 1909년까지 11개의 판본과 25개 언어로 번역된 25개의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는 헤켈의 명성을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과학 대중화자 중 한 명으로 굳히는 데 기여했다. 그의 ''Welträthsel''(세계의 수수께끼)은 1899년 초판 출간 후 10번이나 재판되었고, 궁극적으로 4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75]
헤켈은 인간 진화가 정확히 22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21번째 단계가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중간 단계인 "잃어버린 고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잃어버린 고리에 ''Pithecanthropus alalus''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말을 하지 않는 원숭이 인간"으로 번역된다.[76]
헤켈의 저서 및 관련 서적 목록은 독일 위키소스의 그의 항목을 참조할 수 있다.
일본어 번역본으로는 다음이 있다.
제목 | 번역자 | 출판사 | 출판 연도 | 비고 |
---|---|---|---|---|
『생리학』 | 장하세가야스(長谷川泰) 역, 시마무라리스케(島村利助) 외 | 1882년 1월 | 40056543 - 국립국회도서관 서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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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수수께끼』 | 오카가미료(岡上梁)·다카하시마사쿠마(高橋正熊) 역, 가토히로유(加藤弘之) 감수 | 유호관(有朋館) | 1906년 3월 | |
『우주의 수수께끼』 | 쿠리하라겐키치(栗原元吉) | 현황사(玄黄社) | 1917년 | |
『우주의 수수께끼』 | 우치야마켄지(内山賢次) | 춘추사(春秋社) 〈춘추문고(春秋文庫) 제18〉 | 1929년 | |
『인류의 조상』 | 오노히데오(小野秀雄) | 실업지세계사(実業之世界社) 〈신지식총서(新知識叢書) 제12편〉 | 1915년 | |
『생명의 불가사의』 상, 하 | 고토카츠지(後藤格次) | 다이니혼문명협회사무소(大日本文明協会事務所) 〈다이니혼문명협회간행서(大日本文明協会刊行書) 제3기〉 | 1915년 | |
『생명의 불가사의』 상, 하 | 고토카츠지(後藤格次) |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 245-249〉 | 1928년 | |
『진화론의 내용과 의의 진화론의 사회적 진화』 | 이코마요시토시(生駒佳年) 역주 | 난잔도쇼텐(南山堂書店) 〈대역각주독일논문총서(対訳脚註独逸論文叢書) 제1〉 | 1928년 | 헷켈(ヘツケル)『진화론의 내용과 의의』와 ダーギート『진화론의 사회적 진화』의 합본 |
『우주의 신비』 | 오카자와타케시(岡沢武) | 다이토출판(大東出版社) | 1939년 | |
『자연창조사』 상권 | 이시이토모유키(石井友幸) | 세이나사창립사무소(晴南社創立事務所) | 1944년 | |
『자연창조사』 제1권 | 이시이토모유키(石井友幸) | 세이나사(晴南社) | 1946년 | |
『자연창조사』 제2권 | 이시이토모유키(石井友幸) | 세이나사(晴南社) | 1946년 | |
『생물의 놀라운 모습』 | 토다히로유키(戸田裕之) 역, 코바타이쿠오(小畠郁生) 일본어판 감수 | 가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 | 2009년 4월 | ISBN 978-4-309-25224-7 |
『해부도설』(『解剖図説』) | 아다치 ぶん타로 | 아동신문사(児童新聞社) | 1904년 7월 | 발도르벤(Baldreven)과의 공저, [ 40056260 - 국립국회도서관 검색] |
7. 수상
하켈은 1885년 미국철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63] 1907년 빌헬름 2세 황제로부터 엑설런시(Excellency) 칭호를 받았고,[64] 1908년에는 런던린네학회의 다윈-월리스 메달을 수상했다.[65][66]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 동부에는 해발 4090m의 하켈 산(Mount Haeckel) 정상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이 산은 진화 분지(Evolution Basin)를 내려다보고 있다. 뉴질랜드에도 해발 2941m의 하켈 산(Mount Haeckel)이 있으며,[65][66] 소행성 12323 하켈(12323 Haeckel)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예나에는 헤렌베르크(Herrenberg)에 그의 기념비(1969년 건립)가 있으며,[67] 에른스트-하켈-하우스(Ernst-Haeckel-Haus)에 전시관이 있고,[68] 예나 계통 박물관(Jena Phyletic Museum)에서 오늘날까지도 그의 업적을 공유하며 진화에 대한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69]
심해어인 하리오타 하켈리(Harriotta haeckeli)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70]
연구선 에른스트 하켈(Ernst Haeckel)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71]
1981년 베네수엘라 마라카이시에서 에른스티아(Ernstia)라는 식물학 저널이 발간되기 시작했다.[72]
2013년에는 클라트리니과(Clathrinidae)에 속하는 석회질 해면의 일종인 에른스티아(Ernstia) 속이 기재되었다. 이 속에는 이전에 클라트리나(Clathrina) 속으로 분류되었던 5종이 포함된다. 이 속의 이름은 해면 동물의 분류학과 계통 발생에 대한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에른스트 하켈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73][74]
연도 | 상 이름 |
---|---|
1864년 | 코테니우스 메달 |
1894년 | 린네 메달 |
1900년 | 다윈 메달 |
1908년 | 다윈-월리스 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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